
이미지: AI 생성 — METAL LAB
"물뿌리개를 집어서 아래쪽 선반의 초록색 통에 넣어 줘."
이 한 문장을 듣고 로봇은 테이블까지 걸어갔다. 물뿌리개를 집어 든 뒤 몇 걸음을 더 옮겨 선반 앞에 섰고, 지정된 자리에 내려놓았다. 구글 딥마인드가 7월 30일(현지시간) 공개한 '제미나이 로보틱스 2(Gemini Robotics 2)' 발표에 담긴 시연이다.
심부름치고는 시시해 보인다. 그런데 구글 딥마인드는 이 장면을 두고 "처음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전체를 제어했다고 썼다.
앉아서 팔만 뻗던 로봇이 일어섰다
이전 세대 모델들은 휴머노이드의 상체를 제어해 탁자 위 작업을 처리하는 데 집중했다. 이번 모델은 다리와 몸통, 팔, 여러 개의 손가락을 하나의 모델이 함께 움직인다. 회사가 발표문 부제로 뽑은 표현이 "발끝에서 손끝까지(from feet to fingertips)"다.
의자에 앉은 채 팔이 닿는 범위만 정리하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가로지르고 몸을 낮춰 바닥 물건까지 집게 된 셈이다. 걷기와 자세 낮추기, 몸 이동, 장애물 회피가 물건을 집는 일과 같은 층위에서 다뤄진다. 다만 구글 딥마인드도 "움직임 속도는 아직 더 발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대를 따라가 보면 방향이 뚜렷하다. 2025년 3월 제미나이 로보틱스가 나왔고, 9월 1.5에서 에이전트 개념이 붙었으며, 올해 4월 ER 1.6이 물리 세계 추론을 강화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리가 붙었다.
두뇌와 몸을 갈라 놓은 세 개의 모델
이번 발표는 모델 하나가 아니라 셋이다. 역할이 다르다.
제미나이 로보틱스 2는 비전-언어-행동(VLA) 모델이다. 카메라가 본 것과 사람이 말한 것을 받아 모터 제어 신호로 바꾼다. 몸을 실제로 움직이는 쪽이다.
제미나이 로보틱스 ER 2는 '체화 추론(embodied reasoning)' 모델로, 로봇의 고차원 판단을 맡는다. 사람과 대화하고, 방을 살펴보고, 몇 분씩 걸리는 다단계 작업을 계획한다. 구글 딥마인드는 이 모델이 수백 번의 결정이 필요한 긴 작업을 진행하다 중간에 한 단계가 실패하면 스스로 되돌아가 고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비게이션과 운전자의 관계에 가깝다. ER 2가 "다음은 좌회전"을 정하면 VLA가 실제로 핸들을 돌린다. AI타임스는 ER 2가 양방향 스트리밍 기반의 제미나이 라이브 API와 통합돼, 기존 시스템에서 나타나던 '멈추고 생각하는' 지연이 줄었다고 전했다.
세 번째는 제미나이 로보틱스 온디바이스 2다. 클라우드에 연결하지 않고 로봇 안에서 도는 경량 모델이다. 구글 딥마인드는 새로운 양팔 로봇에 적응시키는 데 몇 시간, 보통 200개 미만의 예시면 된다고 밝혔다. 자전거를 바꿔 타도 몇 시간이면 손에 익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로봇 두 대가 팀을 이룬다
이번에 함께 공개된 또 하나는 여러 대가 함께 일하는 능력이다. 구글 딥마인드는 ER 2에 로봇들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기능을 넣었다고 밝혔다. 어질러진 방을 치우는 작업을 한 대가 끝까지 하는 대신, 다른 로봇과 나눠 더 빨리 끝낸다는 설명이다.
주방에서 한 사람이 재료를 다듬는 동안 다른 사람이 불을 올리는 장면에 가깝다. 순서를 정하고 서로 부딪히지 않게 맞추는 일이 곧 ER 2가 맡은 계획의 영역이다.
성공률 표를 자기 손으로 공개했다
눈에 띄는 건 구글 딥마인드가 성공률 그래프를 함께 냈다는 점이다. 같은 모델 체크포인트를 세 가지 로봇 형태에 그대로 붙여 측정한 값이다.
전신 조작(앱트로닉 아폴로 2 + 인스파이어 핸드)에서는 탁자 위 물건 집기 68.4%, 선반에서 집기 76.3%, 바닥에서 집기 45.7%였다. 몸을 낮춰야 하는 바닥 작업이 가장 어렵다는 뜻이다.
다섯 손가락 조작(아폴로 2 + 샤르파웨이브 핸드)은 편차가 컸다. 전구를 푸는 작업은 92%였지만 끼우는 작업은 36%에 그쳤다. 쓰레기봉투 묶기 44%, 지퍼백 밀봉 40%, 쓰레받기 32%가 뒤를 이었다.
반면 두 손가락 그리퍼(프랑카 듀오)는 오히려 안정적이었다 — 정밀 삽입 89.6%, 공구 키팅 78.9%, 일반 집기·놓기 74.2%. 구글 딥마인드는 그래프 설명에 "다섯 손가락 정밀 조작은 여전히 어렵다"고 직접 적었다.
작업 진행 상황을 읽는 능력도 수치로 나왔다. AI타임스에 따르면 ER 2는 영상 속 진행률을 다섯 단계로 나눠 판단하며 분류 정확도가 57.4%, 특정 사건이 일어난 순간을 짚는 '모멘트 파인딩'은 91.3%였다. 요리를 하다가 "이제 다 됐다"를 아는 능력에 해당한다.
사람이 다가오면 멈춘다
안전 쪽에서는 'ASIMOV-Agentic'이라는 벤치마크를 새로 내놨다. 추론 모델이 VLA가 요청한 위험한 도구 호출을 거부할 수 있는지, 작업이 애초에 가능한지 예측하는지, 확신이 없을 때 사람에게 먼저 개입을 요청하는지를 측정한다.
구글 딥마인드는 ER 2가 안전 제약 준수와 사람 근접 벤치마크에서 자사 로봇 모델 가운데 가장 안전하다고 밝혔다. 사람이 너무 가까이 오면 안전 도구 호출을 발동시켜 로봇을 안전하게 멈춰 세운다.
ER 2는 구글 AI 스튜디오에서 바로 써 볼 수 있고, 제미나이 엔터프라이즈 에이전트 플랫폼에서는 비공개 프리뷰로 제공된다. VLA와 온디바이스 2는 초기 접근 파트너에게만 열렸다. AI타임스는 100개 이상의 테스트 기업이 대상이라고 전했다. 발표문에 이름이 오른 하드웨어 파트너는 앱트로닉, 보스턴 다이내믹스, 어자일 로봇(Agile Robots)이다.
「에디터의 시선」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우리는 아폴로 2를 직접 만져 보지 못했다. 이 기사에서 확인한 것은 구글 딥마인드가 공개한 발표문과 그래프, 시연 영상, 그리고 국내 보도뿐이다. 로봇 성능은 편집된 영상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라, 여기서는 공개된 숫자만 놓고 읽는다.
그 숫자를 놓고 보면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성능이 아니라 성능을 공개한 방식이다. 로봇 발표는 보통 잘된 장면만 편집해 내보낸다. 그런데 이번엔 바닥에서 물건 집기 45.7%, 전구 끼우기 36%, 쓰레받기 32% 같은 숫자가 발표문 안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여전히 어렵다"는 문장도 회사가 직접 썼다.
전구를 푸는 건 92%인데 끼우는 건 36%라는 대목은 곱씹을 만하다. 사람에게 두 동작은 거의 같은 일이다. 그러나 푸는 건 잡고 돌리기만 하면 되고, 끼우는 건 나사산을 맞춰야 한다.
보이지 않는 접촉면의 정렬 문제다. 언어 모델이 문장을 만드는 일과 로봇이 물리 세계에서 결과를 만드는 일 사이의 간극이 이 56%포인트에 압축돼 있다.
국내 팀에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첫째, 지금 손댈 수 있는 건 VLA가 아니라 ER 2다. 구글 AI 스튜디오에서 열려 있어 물리적 로봇이 없어도 영상 이해와 작업 계획만 떼어 검증할 수 있다. 카메라가 달린 설비나 현장을 가진 팀이라면 시험해 볼 여지가 있다.
둘째, 온디바이스 2가 "새 로봇 몸체에 200개 미만 예시로 몇 시간이면 적응한다"고 말한 대목이다. 그대로 재현된다면 로봇 도입에서 가장 무거웠던 일 — 로봇을 바꿀 때마다 데이터를 처음부터 다시 모으는 일 — 이 가벼워진다. 하드웨어를 먼저 고르고 소프트웨어를 맞추던 순서가, 지능 계층을 먼저 정하고 몸을 나중에 고르는 쪽으로 뒤집힐 수 있다.
카롤리나 파라다 구글 딥마인드 로보틱스 책임자는 목표가 "AI를 물리적 세계로 가져오고 모든 로봇이 활용할 수 있는 지능 계층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AI타임스 보도). 지능 계층이라는 표현이 핵심이다. 구글은 로봇을 팔려는 게 아니라, 누가 만든 로봇이든 그 안에서 도는 층을 가져가려 한다. 45.7%와 36%는 그 층이 아직 얇다는 증거인 동시에, 어디를 두껍게 만들어야 하는지 보여 주는 지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