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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L LAB

그록, 3.5억달러 유치…자체 칩 접고 엔비디아 고객으로

몸값은 작년 9월 69억달러에서 35억달러로 반토막, 엔비디아 GPU 빌려주는 네오클라우드로 완전히 갈아탔다

파스텔톤 하늘 위에 종이 질감의 구름들이 떠 있는 이미지

이미지: TechCrunch AI

요약

  • AI 칩 스타트업 그록(Groq)이 3억5000만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5억달러를 인정받았다
  • 지난해 9월 69억달러였던 밸류가 낮아진 배경엔 엔비디아가 창업자 조너선 로스와 핵심 인력을 200억달러 규모 라이선스 계약으로 데려간 사건이 있다
  • 자체 LPU 칩 대신 엔비디아 GPU를 빌려주는 네오클라우드로 전환해 13개 데이터센터, 600만 개발자·기업을 서비스한다
신규 투자액
3억5000만달러
신규 기업가치
35억달러 (2025년 9월 69억달러 대비 하락)
주도 투자사
Disruptive (엔비디아 참여 예정)
직전 사건
엔비디아가 창업자 조너선 로스 등 핵심 인력을 200억달러 라이선싱 계약으로 영입
데이터센터 규모
13곳 (북미·유럽·중동·아태), 2027년까지 54MW→200MW+ 확장 목표
이용자 규모
개발자·기업·AI 네이티브 기업 600만 이상
직전 라운드
2026년 6월 6억5000만달러 (피벗 착수)

칩 만들던 회사가 이제 남의 칩을 빌려준다

그록(Groq)은 원래 엔비디아와 정면승부를 하려던 회사였다. 자체 개발한 LPU(언어처리장치) 칩으로 AI 추론 — 이미 학습된 모델을 실시간으로 돌리는 연산 — 시장에서 엔비디아를 흔들겠다는 게 창업 취지였다. 그런 그록이 3억5000만달러를 새로 유치했다. 이번 라운드는 투자사 Disruptive가 주도했고 엔비디아도 참여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35억달러, 지난해 9월 69억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회사 측은 이를 다운라운드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록 대변인은 TechCrunch에 이번 밸류가 "엔비디아 라이선싱 계약 이후 버전의 그록"에 새로 매긴 값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지난 몇 달 사이 회사의 정체성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엔비디아가 창업자를 데려간 자리

지난해 9월 69억달러 밸류를 받은 지 몇 달 뒤, 엔비디아는 그록의 창업자이자 CEO였던 조너선 로스와 핵심 팀원들을 200억달러 규모 라이선싱 계약으로 데려갔다. 회사를 정면으로 겨누던 경쟁자의 두뇌를 통째로 흡수한 셈이다. 스타 팀을 잃은 그록은 자체 칩 개발 노선을 접고, 엔비디아 시스템을 운영하는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사업자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남은 그록은 엔비디아의 경쟁자가 아니라 고객이 됐다.

이 전환을 처음 시작한 건 지난 6월이다. 당시 그록은 6억5000만달러를 유치하며 피벗의 첫걸음을 뗐다. 이번 3억5000만달러는 그 흐름을 이어받아 규모를 키우는 자금으로, 회사는 "중대형 규모의 엔비디아 가속 컴퓨팅 클러스터를 학습과 추론에 쓰려는 수요"를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13개 데이터센터, 200메가와트를 향해

현재 그록은 북미·유럽·중동·아시아태평양에 걸쳐 13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600만 명이 넘는 개발자, 기업, AI 네이티브 스타트업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사는 2027년까지 전력 용량을 현재 54메가와트에서 200메가와트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메가와트는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많은 GPU 서버를 동시에 돌릴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이 목표대로면 그록의 인프라 규모는 3년 안에 4배 가까이 커진다.

Disruptive 대표를 겸하는 알렉스 데이비스 그록 회장은 성명에서 "We are building Groq into the world's leading AI inference cloud"라고 말했다. 추론이 AI 인프라에서 가장 크고 핵심적인 층위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네오클라우드, 다들 하지만 다들 걱정한다

엔비디아 GPU를 빌려 AI 인프라를 파는 사업을 업계에서는 흔히 '네오클라우드'라 부른다. 그록만의 선택지는 아니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CoreWeave), 램다(Lambda), 네비우스(Nebius) 같은 회사에도 GPU를 공급하면서 동시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공급자이자 투자자, 두 역할을 겸하며 자기 GPU를 쓰는 회사들이 몸집을 불리도록 밀어주는 구도다.

문제는 이 사업이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느냐다. 코어위브는 최근 2분기 매출이 크게 늘고 메타·앤스로픽과 대형 계약도 따냈지만, 투자자들은 이 회사의 높은 설비투자 부담과 부채 의존도, 빠르게 감가상각되는 하드웨어 리스크를 계속 지적하고 있다. 성장을 실제 현금흐름으로 바꿀 수 있는지가 네오클라우드 전체의 숙제로 남아 있다. 그록의 재무 상태는 아직 비공개지만, 이번 피벗으로 회사는 엔비디아 생태계 안쪽에 완전히 들어와 있다.

에디터의 시선

그록의 이번 라운드는 몸값이 반토막 났다는 숫자보다 그 밑에 깔린 서사가 더 흥미롭다. 자기 칩으로 엔비디아를 이기겠다던 회사가, 창업자를 엔비디아에 뺏기고, 결국 엔비디아 GPU를 팔아 살아남는 회사로 다시 태어났다.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말하는 "이기지 못하면 합류하라"는 문장을 이렇게 문자 그대로 실현한 사례는 드물다. 회사가 이를 "다운라운드가 아니다"라고 굳이 강조한 것도 이 서사를 의식한 방어처럼 읽힌다.

인퍼런스 칩 스타트업들이 최근 1~2년 겪은 흐름을 지켜보면 결론이 비슷하게 수렴한다. 세레브라스든 그록이든, 독자 아키텍처로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를 흔들려던 시도는 소프트웨어 호환성과 개발자 관성이라는 벽 앞에서 속도를 잃었다. 반면 엔비디아 GPU를 그대로 빌려주는 사업은 진입장벽이 낮은 대신 마진도 얇다. 그록의 전환은 이 벽을 넘지 못했을 때 나오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국내에서 AI 반도체나 인프라 사업을 준비하는 팀이라면 이 사례에서 챙길 교훈은 명확하다. 자체 칩으로 승부하려면 소프트웨어 스택과 개발자 커뮤니티를 함께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실제보다 훨씬 길게 잡아야 한다. 그 시간을 벌지 못하면, 결국 남의 칩을 빌려주는 사업으로 방향을 트는 것도 부끄러운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다만 그 사업조차 코어위브 사례처럼 설비투자 대비 현금흐름이 받쳐줘야 지속 가능하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몇 주 안에 그록의 다음 행보는 데이터센터 증설 발표와 새 고객사 공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엔비디아가 투자한 다른 네오클라우드들과 가격·용량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고, 이 경쟁에서 누가 먼저 흑자 전환 소식을 내놓느냐가 네오클라우드 모델 전체의 신뢰도를 가를 시험대가 될 것이다.